2022.06.25

시간이 빠르다. 벌써 반 년이 지나갔다. 지난 한 학기동안 나는 정말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가볍게 나눈 학회원들간의 대화에서, 그리고 이미 사회에 나가있는 선배님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나는 어쩌면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내게 맞는 업무는 무엇일지, 어쩌면 미래에 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하던 과생활을 접고 학회를 하며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더욱 짙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성격도 정말 많이 변해감을 느끼고 있다.

학회의 좋은 점? 물론 다양한 경험과 러닝 포인트를 얻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비저닝을 다니고 종강총회 때 많은 선배님들을 만나뵈며 든 생각은, '학회에서 남는 것은 소중한 친구와 네트워크이다.' 라는 것이다. 모든 선배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학회 사람들은 지금도 자주 만난다고.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학회 사람들이라고. 액팅 때 친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업계에 나와서 해당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학회 사람들이 똘똘 뭉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왜 문과가 학회를 필수라고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중요한지 깨달았고, (어디든 그렇겠지만) 이 쪽 세상에서의 네트워킹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엄청난 자산임을 알았다. 그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니, 학회에서의 인간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이 학회에 오게 된 이상 나 역시도 그런 네트워킹에 참여해야 했고, 그래야 학회의 베네핏을 100% 챙겨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학회를 들어가서 세션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사람들과 그다지 가까워진다고 느끼지 못했다. 같은 힘듦을 공유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 그저 세션이 끝나면 적당한 사이로 돌아갈 그런 정도의 가까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보다 내 마음을 완전히 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세션 하는 동안에는 그래도 편한 정도로 친했지만, 과연 따로 만났을 때 내가 온전히 이 사람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는가. 나는 실은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내게 한 달 남짓한 시간은 온전히 친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세션 진행 중에는 점심이나 저녁을 밖에서 약속을 잡고 먹기 힘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개인간의 친밀감 형성이 어려웠다. 그저 그런 사이로 세션은 끝났고 흔히들 말하는 '소속감'이라는게 그렇게 크게 있지 않았다. 사람 한 명 한 명은 다들 너무 좋은 사람이고 소중한 인연들이지만, 그냥 그 정도로 친하진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다들 첫 팀에 애정이 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팀은 없다. 첫 팀은 처음이라 너무 어색했고 적응하기 바빴고, 두 번째 팀은 그에 비해 서로 친밀해졌지만, 사적으로 따로 만난 일은 많지 않아 애매한. 마지막 팀에서의 논의가 제일 마음은 편했지만 (그만큼 논의에 익숙해지고 학회라는 집단에 적응했기 때문도 있음) 이 셋 중 명확한 우열을 가르긴 어려웠다. 다 나름 좋았고 특징이 달랐다. 그래서 팀끼리 매우 친하고 끈끈한 몇 몇 팀들이 난 참 부러웠다. (왜 내가 속한 팀들은 다 밍글링 얘기도 안나오냐ㅋㅋㅋㅋ) 

나이가 한 살 씩 많아지면서 매우 자주 드는 생각은, '소속된 무리'가 없으면 결국 그 사람들을 꾸준히 보기는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개개인으로 친하던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씩 만나는 반가운 친구일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마음 편하게 만나는 'OO팟' 과는 다르다는 것.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내가 소속된 그룹이 어디인가, 그 사람들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를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나와 안 맞는 사람이 속해있는 무리의 약속은 회피하게 되었다. 이전엔 자주 만나던 모임들이 점차 분해되고 안 만나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자니 불안해졌다. 이 사람들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까? 이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만날까? 졸업하고 취직해서도 꾸준히 볼 수 있을까? 이대로 언젠간 멀어지는 건 아닐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런 '팟'이 딱히 없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불안해진다. 결국 이런 그룹이 형성되지 않으면 나중에 절대 만날 일이 없게 되니까. 그래서 학회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어렵다. 나랑 같은 기수인 사람들은 아직 한 학기가 남았지만, 수료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제 자연스럽지 않겠지. 그 와중에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무리가 딱히 없기 때문에 불안하다. '나도 저 팀처럼 끈끈한 팀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발버둥친다. 별 생각 없이 그냥 만나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고 지내던 지난 학기와는 달리(학회 한정, 그 땐 어떻게든 과에 이름을 알리고 과 생활을 이어가려고 바둥바둥 노력함. 지금은 포기했지만), 이번 방학은 다소 공격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그래야 내가 기억될 것 같아서. 시간이 흐르고 학회를 수료하고 학교를 졸업했을 때 이 집단에서 나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인식해 불러줄 수 있도록. 근데 그게 참 벅차기도 하다. '나는 이 사람들과 친해져야 해. 가까워져야 하고. 소중해야만 하고 끈끈해야만 해.' 라고 압박하는 기분이 든다. 다들 학회사람들끼리 잘 만나고 잘 놀러다니는데 나는 아직 그 정도로 가까워지지 못하고 겉도는 기분이 들어서. 그게 너무 싫어서 발버둥친다. 다들 언제 어떻게 놀러다니고 친분을 쌓는 건지. 학회에 수업만 들어도 벅찬 하루하루일텐데. 존경스럽고, 앞으로 2학기에 내가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걱정이 된다. 당장 지금도 번아웃와서 약속 다 취소하고 싶은데 말이지. 누굴 만나서 얻는 효용도 있지만 내가 혼자 해야할 일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걸 하나도 챙기고 있지 못하다. 더 나아가 심지어는 기존 인간관계를 챙기기도 벅차다. 정작 챙겨야 할 사람들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근데 내가 진짜 '챙겨야 할 사람'은 누구지? 사실 이것부터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만큼 그 사람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까? 

이런 일련의 사고를 하면서 느낀 건 두 가지이다. 첫 째는 내가 마음을 온전히 주기까지에 꽤나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것이며, 그 마저도 완전히 열리기 전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마음의 문이 스르륵 다시 닫힌다는 것이다. 내가 친하게 지내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물론 다 좋아하는 친구들이고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아직 내가 완벽히 문을 열지 않은 사람이 꽤나 많다. 그리고 과거에는 나 힘든 얘기를 참 잘했는데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기 전에는 잘 하지 않는다는 것. 상처를 받아도 티를 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그래서인지 학회 사람들은 나를 '상처받지 않고 내면이 단단한, 줏대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만도 한게 내가 힘든 내색을 보이거나 상처를 받는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거든. 그럴 겨를도 없었고 딱히 티내기도 싫었고. 특히 그게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라 논의하거나 학회 공식 행사에서는 더더욱. 나는 내가 학회 사람들의 눈에 T로 비춰지고, 내강외강으로 비춰진다는게 의아했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니까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 거 같다. 애초에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내가 한 행동을 곱씹을 시간이 없고 누구 눈치볼 겨를이 없었던 것도 이유고ㅋㅋㅋ 근데 예전에 비해서는 내가 좀 무뎌진 거 같다. 예전엔 내가 한 행동과 말들을 곱씹고 곱씹으며 잘못한게 있나 검열하고 힘들어했다면 지금은 한 두번 생각하다가 그냥 뇌가 차단하고 그만둘 수 있다. 근데 아직도 누가 나한테 상처주는 말하거나 뭔가 걸리는? 말 하면 혼자 무한 상상하다가 그냥 바로 무너져 내림 ㅠ 아무튼 근데 나에게 한 달 남짓한 시간은 마음을 열기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기간동안 친해지고 끈끈해진 다른 사람들을 보며 부럽고 대단했다. 

두 번째는 내가 어떤 그룹에서의 나의 존재감에 굉장한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간의 관계에서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 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후배들한테도 이름이 많이 알려져있었고, 실제로 2년 차이나서 접점 없는 후배도 나보고 '언니 모르면 간첩' 이라고까지 했으니까. 그런 삶에 익숙해졌는지, 대학교에 들어와 내 존재감이 없던 20년 1학기는 너무너무 힘들었고, 2학기부터 열심히 과생활을 하면서 어느순간 다시 과 생활을 하면 모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지위(?)를 1년 반을 유지하고 22년도가 되어 3학년이 되니까, 다시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려면 시간과 돈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 초반에는 나름 밥약도 하고, 과애들도 만나면서 간간히 과생활을 했다. 하지만 학회하느라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고, 그 사이에 다른 내 동기들은 새내기들과 21학번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정말 불안하고 싫었다. 나를 모르는게 무서웠다. 잊혀지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너무 싫었던 사람인데 잊혀져 갔다. 존재감이 사라져갔다. 근데 학회를 지속하고 내 체력에 한계가 있어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젠 22학번에 '최소정' 하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듯. 근데 그냥 포기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2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 뭔지 모를 불안감과 부러움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런 불안함은, 이 사람들에게 내가 있는 무리보다 더 소속감이 느껴지는 무리가 생기고, 나보다 더 편하고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려 내가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는 무리가 사라져버릴까- 하는 부분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학회도 마찬가지다. 어느 집단을 가나 나는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두루두루 잘 지내며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뭐랄까, 학회에서 나의 존재감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을 것 같은 느낌. 오히려 더 주목받고 사랑받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저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언제나 내가 유명할 필요도, 최고일 필요도 전혀 없다. 어떤 집단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무난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모든 술자리에 나가고, 모든 사람들과 만나고, 모든 사람들이 찾는 사람이 되는 것? 물론 때로는 그런 인맥이 도움이 되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소용 없고 부질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삶을 알게 모르게 갈망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 덜 여물었나보다. 정말 소중한 몇 명만 있어도 된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그게 완전히 나로 자리잡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성장통이 있나봐. 누군가를 만나고, 어느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나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지겹고 버겁고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