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3.

요새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지낸다. 아무래도 하루도 혼자 있을 틈이 없이 지냈던 지난 날들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그 혼자있는 시간들에 나름 적응해 혼자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예전엔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너무너무 우울해졌는데, 요새는 전에 비해 그 빈도가 낮아진 느낌이다. 물론 가끔 주기적으로 우울하긴 한데, 그 정도는 예전에 비하면 아주 많이 나아졌다. 사실 우울보다도 무기력에 가깝지만. 요샌 자주 무기력증이 온다. 뭔가 열심히 일은 벌리고 있는데 벌린 것에 책임 지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한 채 얼레벌레 겨우 겨우 따라가는 기분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이게 기분이 아니라 실제인 것 같아 더욱 더 무기력해진다.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당장 눈앞에 해야할 일이 너무 산더미 같아서,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조금씩 들쑤시는 느낌이랄까?

요새 계속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난 뭐해먹고 살까. 내가 가진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확실히 난 코딩에 재능이 있지도 않고, 코딩을 업으로 삼아 평생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사는 삶을 즐거워하지도 않을 것 같다.  고3 때 양병문 쌤이 면접 대비 해주실 때, 마케팅과 광고 수업 들은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반짝이는 나를 보시더니, (난 쌤한테 경영 얘기를 1도 한 적이 없음에도), "소정아 너 그냥 경영써. 왜 굳이 컴공에 6개를 다 쓰려고 하는거야" 라고 하셨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 정도로 신나 보였던 걸까. 여러모로 그 일이 인상깊다. 요샌 잘 모르겠다. 교환이고 이중이고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하고 싶은 일에 비해 몸이 너무 게으르다. 놀던 관성이 그대로야 바뀌질 않아. 그나마 요새는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척을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맘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확실히 나는 누군가랑 같이 있거나 환경이 조성되어야 공부하는 듯.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공부 진짜 못한다. 뭐 아무튼 요새 그렇다. 나는 제자리인데 자기 길을 찾아가며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조금 무섭다. 그리고 또 부럽기도 하다. 난 저렇게 못 따라가고 있는데. 난 아직도 아래에서 아둥바둥 하는데. 아직도 알고리즘을 제대로 모르고, 그나마 해본 장고나 인공지능도 겉핥기 정도로만 안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난 애초에 들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적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중학교때도 '공부에 미쳐서 공부만 해 본' 적이 없었고, 엄마는 그래서 나의 가능성을 믿고 삼성고에 보내셨다. 근데 삼성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 죽어라 공부만 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난 가끔 나의 한계가 궁금했다. 내가 한 가지 일에 미쳐서 그 일을 파고들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근데 나는 애초에 한 가지 일에 미치는 성향이 아닌가보다. 한가지 일을 하면 여러가지 일들이 막 하고 싶다. 다 하고 싶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싶다. 인생이 아주아주 길었으면 좋겠다. 한 1년은 춤만 춰보고, 한 1년은 프로젝트만 해보고, 한 1년은 놀기만 해보고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참.. 이런 성격이 어디서 잘 먹힐까? 한가지 분야에 파고들어 그 분야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 보면 대단하고 부럽다. 난 그 열정이 상당히 분산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할 만큼 노력해본 적이 없다. 운이 좋게도 고등학교때는 이것저것 조금씩 하던 것이 큰 성과를 안겨줬지만, 대학교1학년때는 정말 '조금씩'만 하다가 끝나버렸다. 아쉬운게 참 많다. 제대로 한 게 없는 1년이라 아쉽다. 그나마 진심이었던건 춤? 근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도 최선을 다했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집에선 연습을 거의 안했으니까. 그냥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이런 내가 싫은 건 아니다. 그냥 좀... 걱정이 된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고 이런 성향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싶다. 이렇게 살면서도 또 성공은 하고 싶다. 그것도 아주 크게.

낯섦. 요즘 낯선 느낌을 자주 받는다. 얼마전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지하철의 노래소리가 귀에 꽂히듯 들어왔다. 그리고 그 공간과 그 소리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갑자기 이 공간과 내가 분리되는 기분. 고등학교때는 이 지하철 안내 소리가 설레고 신나는 소리였는데. 1년에 몇 번 못 듣는 특별한 이벤트 같은 거였는데, 이제는 나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낯설었다. 그래서 서글퍼졌다. 지하철을 타면서 신나고 설레던 그 기분을 다시는 느끼지 못 할 것만 같다.
오늘은 역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데 밤하늘의 풍경과 우리 집으로 걸어오는 길의 풍경이 낯설었다. 차 소리도, 사람들의 소리도 다 내게서 멀어져 다른 공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또 서글퍼졌다. 그 때의 그 감정을 다시는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이 순간의 감정도 조금 지나면 전부 증발되어버려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또 서글펐다.

그래서 글을 적는 것을 좋아한다. 그 감정을, 그 생각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어도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